여러분은 삼청동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삼청동은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장소 중 한 곳일 것이다. 안국역과 경복궁역 사이에 자리한 많은 가게와 집들은 여전히 한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복궁 돌담과 청와대를 지나 작은 골목들을 거닐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즐길 수 있다. 에디터는 이 외에도 삼청동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비롯해 국제갤러리, 현대갤러리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유서 깊은 갤러리들부터 개성 넘치는 신진 갤러리들까지 삼청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미술계의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엑스디자인이 지난 시간 동안 다양한 미술관(Museum)의 전시를 독자분들께 소개해드렸다면, 이번 호에서는 닮은 듯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갤러리(Gallery)의 모습을 전달해드리고자 한다.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전시와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과 같은 국공립미술관부터 리움과 같은 사립미술관, 크고 작은 규모의 갤러리, 미술, 음악, 공연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혹은 아트센터, 심지어 동네의 작은 카페나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 안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은 우리에게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든,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낯선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공간에서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운영 목적과 방식에 따라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두 가지 형태로 크게 나뉘게 된다. 하얀 벽과 높은 천장, 아티스트의 작품을 담은 전시, 전시를 찾아오는 관람객들, 갤러리와 미술관의 겉모습은 매우 닮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확연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탈리아어 ‘GALLERIA’에서 유래한 갤러리는 지붕이 있는 긴 복도 ‘회랑(回廊)’을 뜻한다.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자신의 저택 회랑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소장품을 전시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귀족들이 자신이 소장한 그림을 지인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집안에 만든 방(회화실)을 의미하게 됐다. 현대에서의 갤러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작품을 판매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미술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전시 공간으로, 전시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구매 가능하며, 가지고 있는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미술관은 공리(公利)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기관이기에 미술품을 기증받거나 구입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입 사업은 불가능하다.
 
 
미술관의 문턱이 낮아지며 많은 사람이 찾아가곤 하지만, 아직까지 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라고 하면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지거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침묵이 흐르는 조용한 공간에 발을 들이면, 왠지 모르게 작품을 구매해야 할 것 같고, 마음 편히 전시를 감상하는 게 어렵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집처럼 친근한 분위기라면 어떨까? 갤러리 같은 집이 아닌 집 같은 갤러리라면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붉은색 벽돌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아줄레주 갤러리의 외관은 보이는 그대로 일반적인 가정집을 연상케 한다. 갤러리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폐가를 개조하여 누구나 가까이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끔 공간을 구성했다. 박서영 관장은 17년 동안 다양한 작품을 연출해온 미술감독으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트렌디한 전시 큐레이팅을 비롯해 아줄레주만의 차별성을 구축했다. 예술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아줄레주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동시에 재능있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전시와 연계된 컬쳐 프로그램과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아줄레주 갤러리는 2020년을 마무리하는 하반기 기획전으로 게리 코마린과 강준영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PUNCH DRUNK LOVE≫ 展을 준비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이름을 빌려온 이번 전시는 커다란 충격처럼 쇼킹한 사랑을 경험하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닮아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서로를 향해 달려와 만나는 두 사람처럼, 서로 다른 예술가의 교차점을 이야기한다. PART 1 에서는 게리 코마린과 강준영 모두 건축가의 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게리 코마린의 추상에서 보이는 두터운 회반죽과 강준영의 OX시리즈에서 느껴지는 물감의 마티에르(MATIÈRE: 재료, 재질, 소재)는 마치 도장단계의 건물 외벽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마천루처럼 쌓인 게리 코마린의 CAKE 시리즈와 강준영의 드로잉에서 읽을 수 있는 건축도면적 기호들 역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PART 2 에서는 이들의 작업 세계의 관한 교집합을 중점으로 고찰해본다. 두 사람 모두 기억을 재구성해 ‘집’이라는 보통의 공간에서 예술을 시작한다. 특히,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끄집어내 캔버스 위 붓으로, 손가락 끝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표현해낸다.
 
 
1, 2층으로 구성된 갤러리 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마치 한 사람의 작품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져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리 코마린은 특유의 대담한 터치와 색감으로 전 세계 큐레이터들과 컬렉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미국 후기 추상의 거장이다. 코마린의 매력은 ‘이질성’이라 볼 수 있는데, 그는 산업용 방수포나 수성페인트 등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종의 충돌이 발생하며, 이 충돌은 그저 부딪힘에 그치지 않고 우아함과 기이함, 절제와 자유로움 등을 자아내고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아우른다. 또한, 그의 추상 작업은 방향성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워 수평적 눈높이로 그림을 그리는, 보편적인 페인팅 과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스튜디오 바닥에 캔버스를 뉘인 채 사방을 돌면서 페인트 붓을 자유롭게 휘젓는다. ABSTRACTION SERIES의 도 이러한 작업 방식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화폭 안으로 뛰어 들어 완성된 코마린의 추상 작업은 관람객의 해석에 의해 여러 가지 의미로 굴절되며, 그 순간 작품이 완성된다. 결국 그의 작품은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마주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2층에서는 강준영 작가가 직접 작은 소품 하나부터 작품의 배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전시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강준영 작가는 유년 시절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과 이야기 등을 기록하며 이를 신표현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클리셰들을 적극 차용해 도자와 회화 등의 매체로 표출하는 아티스트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집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물리적인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다. 작가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집을 항아리와 드로잉을 통해 풀어댄다. 그가 항아리라는 수단을 선택한 이유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연희동 주택에서 3대가 함께 살아온 작가에게 마당에 있던 할머니의 커다란 장독대는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는 매개체이자 그를 지탱하는 주춧돌이었다. 온기 어린 손끝으로 만들어낸 항아리는 작품 표현의 주요 매체이자 작업의 단초인 것이다.
 
 
나이와 인종, 국적도 다른 두 아티스트의 공통점과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각각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발현됐는지 살펴본 이번 전시는, 이 두 사람의 조우 자체를 ‘커다란 충격처럼 쇼킹한 사랑’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우리는 전시장에 가면 작품 속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려 하고 작품 해석에만 너무 몰두하느라 골머릴 겪을 때가 종종 있다. 전시장을 모두 돌고 나면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괜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가끔은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작품의 멋진 형태나 색감에 감탄하기도 하며,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갤러리는 작가들이 작품으로 수입을 얻게 해주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곳이다.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품과 역량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며, 나아가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대중들에게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 역시 갤러리라 할 수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아닌, 생활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예술을 만나는 곳, 갤러리를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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